우리가 흔히 '치매'라고 부르는 질환은 사실 단일한 병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에 의해 뇌 기능이 손상되면서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상태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마치 '암'이라는 단어가 위암, 폐암, 간암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처럼 말이죠. 치매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원인 질환에 따라 뇌의 손상 부위와 그에 따른 초기 증상도 명확한 차이를 보입니다. 알츠하이머병, 혈관성 치매, 루이체 치매는 가장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으로, 이 세 가지 치매가 우리 뇌의 어떤 영역을 공격하고, 그로 인해 어떤 특징적인 변화가 나타나는지 이해하는 것은 치매를 조기에 발견하고 올바르게 대처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각 치매가 뇌의 어느 부분을 손상시키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기억의 도서관이 무너지는 알츠하이머 치매
알츠하이머병은 전체 치매의 약 60~70%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흔한 유형입니다. 이 병은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라는 이상 단백질이 뇌에 쌓이면서 시작됩니다. 이 단백질들은 뇌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데, 특히 가장 먼저 공격하는 부위가 바로 '해마'와 그 주변의 '내측 측두엽'입니다. 해마는 우리 뇌에서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고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마치 도서관의 사서와 같은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에서 이 해마가 손상되면, 방금 들었던 이야기를 잊어버리거나, 물건을 둔 곳을 기억하지 못하는 등의 단기 기억력 저하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병이 점차 진행되면 손상 부위는 뇌 전체로 퍼져나갑니다.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두정엽이 손상되면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거나 말을 더듬게 되고, 이성과 판단을 관장하는 전두엽까지 침범하면 성격이 변하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습니다. 결국 뇌 전체가 위축되면서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알츠하이머는 기억의 중추인 해마에서 시작해 뇌 전체로 서서히 퍼져나가며 우리의 기억과 삶을 잠식하는 질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혈관 문제로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
혈관성 치매는 알츠하이머 다음으로 흔하며, 뇌졸중(뇌경색, 뇌출혈)이나 동맥경화 등으로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서 뇌세포에 산소와 영양이 공급되지 않아 발생합니다. 알츠하이머가 특정 단백질에 의해 서서히 진행되는 것과 달리, 혈관성 치매는 혈관 문제라는 '사고'에 의해 갑작스럽게 발생하거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계단식 악화' 양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손상 부위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느 혈관에 문제가 생겼느냐에 따라 손상되는 뇌의 위치와 기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뇌의 깊숙한 부분인 피질하 영역이나 뇌세포 간의 연결을 담당하는 백질 부위에 미세한 혈관 손상이 반복적으로 누적되면, 행동이 느려지고 판단력이 저하되며,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지는 등의 증상이 먼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면, 전두엽으로 가는 큰 혈관이 막혔다면 기억력은 비교적 괜찮더라도 갑자기 성격이 변하거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혈관성 치매는 손상된 뇌 부위에 따라 기억력 저하 외에도 운동 기능 장애, 감정 조절의 어려움, 실행 기능 저하 등 매우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알츠하이머와는 다른 치매'라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환시와 파킨슨 증상을 동반하는 루이체 치매
루이체 치매는 알츠하이머, 혈관성 치매와는 또 다른 특징을 가진 치매입니다. 이 병은 '알파시누클레인'이라는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뭉쳐 형성된 '루이소체(Lewy body)'가 대뇌 피질과 뇌간 등 뇌의 전반적인 영역에 퍼지면서 발생합니다. 루이소체가 뇌의 어느 부위에 쌓이느냐에 따라 매우 독특하고 복합적인 증상이 나타납니다. 먼저, 후두엽(시각 중추)과 측두엽에 루이소체가 쌓이면 헛것이 보이는 '반복적인 환시'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없는 사람이나 동물이 생생하게 보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또한, 뇌간의 흑질이라는 부위에 루이소체가 침범하면 파킨슨병과 유사하게 몸이 뻣뻣해지고, 행동이 느려지며, 손 떨림이나 종종걸음 같은 운동 기능 장애를 동반합니다. 인지 기능의 변화 폭이 매우 크다는 점도 루이체 치매의 주요 특징입니다. 어제는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멍하더니,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명료한 상태를 보이는 등 인지 기능이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듯 급격한 변화를 보입니다. 이 외에도 렘수면 행동장애(꿈 내용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가 초기부터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루이체 치매는 인지, 운동, 정신행동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 진단이 까다롭지만, 특징적인 증상을 이해하면 조기 발견에 큰 도움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치매는 원인 질환에 따라 뇌의 손상 부위가 명확히 다르며, 이는 각기 다른 초기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기억 중추인 해마에서 시작하는 알츠하이머, 뇌 혈관 문제로 손상 부위가 다양한 혈관성 치매, 그리고 환시와 파킨슨 증상을 동반하며 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루이체 치매까지. 이처럼 치매의 종류별 특징과 뇌 손상 부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정확한 진단과 그에 맞는 치료 및 돌봄 계획을 세우는 첫걸음입니다. 혹시라도 주변 가족이나 본인에게 의심되는 증상이 있다면, 막연히 '나이가 들어서'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환자에게 맞는 최적의 관리 전략을 세워 삶의 질을 높이고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